고졸 백수가 진로 정하는 법

고졸 백수가 진로 정하는 법

이 글은 필자의 백수 생활 청산과 성향에 따른 직업 탐구를 위한 인생 설계의 일환이다. 이에 대한 진중한 숙고가 일전에 있지 않았다는 점은 참으로 유감이고 반어적인 의미에서 대단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필자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성찰은 메이플 캐릭터 명과 직업을 고민하는 것보다도 뒷전이었던 것이다. 메이플 얘기가 나온 김에 잠깐 이어가자면, 필자는 도적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민첩한 움직임과 빠른 공격 속도, 사용 무기에 대한 선호와 직업 자유도(?)가 필자의 성향에 들어맞은 것이리라. 게임 캐릭터 직업 선택만 해도 이렇게 고려할 요소가 많고 플레이어의 취향을 많이 반영하는데, 앞으로의 수, 수십 년을 종사할 현생의 직업 탐구에 소홀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내 인생에 대한 예의나 배려가 아니다. 따라서 금방 끝날 일은 아니지만, 오늘, 미뤄왔던 그 고질적 고민을 종식시키고자 한다. 우선적으로는 필자 자신의 성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필자의 직업적 목표는 아직 모르는 상태이므로, 필자의 인생 전반을 통해 성격과 취향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진단을 내려보도록 하자.

필자는 교육적인 것을 좋아한다. 즉, 직업 활동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것이 많다면, 더불어 그것이 관심 있는 분야라면 직업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성장과 목적물 쟁취를 위해서는 고통의 감수가 일면 수반되어야 하지만 이왕이면 원하는 분야일수록 그러한 수행이 더 탁월할 것이라고 생각되며, 따라서 지금 필자에겐 '원하는 것에 대한 고통의 감수'가 필요하다.

1. 교육적일 것

2. 취향 저격인 분야일 것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좋다. 가령 외식업 아르바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아르바이트 생으로 일을 잘 하다가 정식 종업원이 되어, (프랜차이즈일 시) 매니저가 되거나 본사에 발령을 받게 되고, 임원까지 승진하는 등의 루트를 계획하는 것은 굉장히 낮은 확률일뿐더러 통제할 수 없는 복잡계적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다. 물론 그 어떤 분야도 미래를 예측하고 완고하게 제어할 수는 없지만, 준 통계적 감각에 의한다면,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분석과 그 안에서의 노력 투입으로 맞이하게 될 '대략적인'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에서 본사 임원까지 성장할 가능성은 낮다고 쉽게 예측할 수 있지만, 대기업 사원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접근성 측면에서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는 점에서, 비교하는 상황 간의 조건에 대한 엄밀한 계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일 것

4. 확률이 높거나 적어도 대략적인 결과 예측이 가능한 것

3에 대해 첨언하자면, 성장 가능성이 낮은 직업은 노동 대비 급여가 1 대 1, 혹은 산술급수적인 구조인 것을 가리키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직업은 실력과 경력의 장기적 누적이 급여나 그 외 가치 창출에 대해 멱분포 구조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일으키는 폭발형, 사업형 근로를 지시한다. 예를 들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사업장을 물려받지 않는 한, 설령 물려받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유튜브는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올린다는 가정 하에,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순 비교에 불과하며, 결국에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선택 시점에는 아르바이트도, 유튜브도 어떤 종국을 맞을지 알 수 없다. 특히나 유튜브는 매우 큰 복잡계이기 때문에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오랜 아르바이트로 종잣돈 수천만 원을 모은다면, 그 돈을 투자 따위로 굴려서 얻은 추가 소득을 제외하더라도, 같은 기간을 운영한 망한 유튜브 채널의 수입에 비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비해(물론 매장을 간접적으로 운영한다는 측면에서 경영이나 마케팅, 용역 따위의 지혜를 체득할 수 있다) 한동안 소비 기세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영상 매체 분야의 여러 기법 습득과 창의적 콘텐츠 고안, 마케팅, 사이버 대인 관계, 그를 통한 동종 업계 종사자나 유사 직업인 혹은 다양한 사회 인사라는 인적 자원 확보, 무엇보다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퍼스널 브랜딩 효과 극대화, 가장 중요한 누적된 영상의 장기적 기대 가치 등의 경험과 스펙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비하여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간주할 만하다.

필자의 나이도 20대 후반이고, 학위도, 경력도, 자격도 전무한 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아 위험 부담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아르바이트가 필자의 낮은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독립 후에 100여만 원을 벌어 그중 대부분을 생활비로 소진하면서 얻거나 쌓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이 과연 나의 미래에 대한 탁관卓冠한 투자인지에 대해서 회의감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서울에 간다면 거의 확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필자에게 그나마 도움이 될 만한 알바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고(물론 그러한 알바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이 필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인생에서의 결정적인 사건이 될지는 결과 이전에는 모르는 것이고, 어떤 직업적인 유망성이나 인생의 향로에 대한 올바른 인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자의 앞에 놓인 조건에 대한 택발擇拔의 지난함으로부터 타피躱避할 수 없다.

이에 필자는 독립으로부터 한 발을 물러서야 하느냐는 난관에 봉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의 독립은 필자의 미래의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도 없다. 단지 독립이라는 상황만이 제공될 뿐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되었든 처음부터 쌓아 올려야 한다. 물론 비독립의 상황에서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만약 독립을 하지 않는다면 온전하게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나 스펙 쌓기에 올인할 수 있다. 이것은 이상적인 계획이나 예측은 아니지만, 현재 필자가 놓인 상황이 그와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상황에서의 필자는 이상적인 계획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후에도 그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론, 시점만 다른 동일한 두 조건에 대하여, 과거의 처신이 미래에도 그와 같이 처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지保持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현재 제대로 생활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제대로 생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독립을 유보함으로 인하여 보장된 시간과 여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필자에게 들어온 최근의 제안에 의하면, 필자가 어떤 종류의 자격증 따위를 취득하거나, 요구되는 경력의 적저積貯가 충분해지는 기점에 달한다는 조건에 한하여, 가치 있는 직업이 필자에게 배여配與될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에 필요한 공부에 매진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장성이 월등한 반면 어떤 것으로부터의 종속을 피할 수 없어, 필자의 독립 성장을 저해할 여지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된다. 어쨌든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으나, 필자는 다시 공부를 하게 될 수도 있다.

IT 관련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딥러닝, 인공지능이나 파이썬, 자바 등의 프로그램 코딩 등의 미래 가치가 현저하다고 예상되는 분야와 직종에 대하여 국비 지원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은 기정된 것이다. 이러한 직업 교육을 받는 것이 필자에게 나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중고重考와 숙려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다. 이에 필자는 일언으로 일축한다.

"그들을 고용하는 사람이 되겠다."

물론 위 선언은 필자가 그들을 고용할 경지에 올라섰을 때에야 대단한 선언으로 평가될 뿐이지, 현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시점에서의 저 발언은 단지 무모해 보인다. 어쨌든 필자는 저 직종에 대한 직업 교육을 현재는 받지 않을 것이고 웬만하면 그쪽 길을 아직 걸을 생각이 없다는 뜻이지, 그것이, 유망 직종이 아니라면 다른 경제 활동과 직업 훈련을 통해 고용주의 위치에 올라서기 어렵다는 사실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Q1.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 학문 연구와 밀접한 일

- 작문 실력의 탁월함이 요구되는 일

- 분석적인 일

- 행위 당사자나 여러 주변 일반에 정신적, 정서적 진취眞趣를 고양하는 일

단지 위 네 가지만 가지고도 어떤 것을 필자가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전적으로 교육, 연구직이다. 또는 작가를 포함한 제작자 전반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우선 전업 작가는 배제한다. 작가만으로 성공할 확률이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어진 연구'만' 하는 연구직도 제외한다. 왜냐하면 필자는 압도적으로 높은 자유도가 보장되지 않은 직은 업으로 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연구직 전반이 자유도가 낮다는 말은 아님. 어떤 연구직에 한함).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에겐 교사나 교수, 강사직이 딱이긴 하다.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사람 관계를 맺으면서 내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면서 자신이 성장하고, 운이 좋으면 타자를 계도하기도 하는 등 이보다 더 보람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필자가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공부 방해 요인을 대부분 제거한 이후에야 가능하다. 그 장병障屛은 '젊음에 대한 미련'이라는 문장으로 함축하도록 한다.

Q2. 그러면 어떤 직업 훈련을 할 것인가?

대강의 틀은 잡혔다. 교육직, 그리고 그것을 교수, 교사, 강사의 세 가지로 분류해보자. 난이도 순이다. 만약 연구나 학문 천착 그 자체를 원한다고 한다면, 교수가 되어 덕업 일치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연구는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구를 하기 위해 교수가 되는 것은 잘못이다. 교수가 되면 연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지 교수가 연구를 보장하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교수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에서 연구의 즐거움은 배제된다. 왜냐하면 연구의 즐거움이 목적이 아니면서도 교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의 즐거움은 교수가 되는 필요조건이 아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교수가 될 필요가 없다고 하자. 그리고 애초에 실질적으로 교수가 되는 길은 매우 x100 험난하다. 날고 기는 경쟁자가 발에 치인다. 현재의 수준을 감안하며 눈을 조금 낮춰보자. 교사가 된다고 하자. 초등 교사보다는 중등 교사가 낫겠다. 만약 중등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필자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봐야 한다. 중등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은 말 안 해도 굉장히 치열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설령 내년에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하여 4년을 공부한 후에 임용고시를 최소 2년 만에 통과하였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35살이 된다. 반드시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절대 늦은 나이도 아닐뿐더러, 덕업 일치를 7년(수능 공부 포함) 만에 이룩한 쾌거이다. 물론 교육하는 것과 연구하는 것의 즐거움이 목적이라면 반드시 교사가 될 필요는 없다. 강사(예를 들어 입시 학원 강사)만 된다면 교육과 연구의 즐거움을 비교적 순탄히 이루고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물론 안정성이나 직업 수명은 전의 두 선택지에 비해 낮다). 따라서 필자가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의 말로가 학원 강사라는 가정으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자. 학원 강사는 덕업 일치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가르치고 싶은 분야를 가르치지 못한다면 강사 일은 하기 싫은 노동이 될 수도 있다. 연구는 근무 외에 할 수 있지만 직업 경쟁이 치열한 학원 업계에서 뒷전으로 밀려날 여지가 크다. 뭐가 되었든 이러한 막연한 예측으로 현재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든 뭐든 공부는 해야 한다. 근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는 공부만 해야 하는데 공부만 할 수 없다는 현재의 마음 상태가 필자의 선택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방해하는 마음 상태란 도대체 무엇인가? (Q에 대한 답을 내지 못했다.)

Q3. 공부와 탐련耽戀은 병립竝立할 수 있는가?

답부터 말하자면 둘의 병행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극도의 의지력과 환경 통제를 요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먼저 탐련이란, 어떤 것을 그리워하고 탐하는 마음을 뜻하는데, 여기서 연戀에 해당하는 것은 연애가 될 수도 재물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둘 모두 해당한다. 혹자는, "아니 인생이 걸린 일인데 연애 그까짓 거 1년이든 2년이든 포기할 수 있지 않나?"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필자는 이제 28년 차 모쏠에 접어든다. 연애는 상기한 '젊음에 대한 미련'에 포함된다. 필자의 왕성한 남성 호르몬 분비 현상은 필자로 하여금 가만히 앉아 머리를 한 곳에만 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성욕과 연애가 설령 상관관계가 있다고 할지라도 논리적으로는 별개일 수 있음을 각지하길 바란다. 성욕을 연애나 성교로 해결하여 공부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는 다소 이상한 공식을 세운 것 역시 아니다. 단지 '미련'을 깔끔하게 털고 간다는 의미이다. 연애를 하게 되고, 그 후에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오히려 더 생각이 복잡해져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건 그때 일이고, 어쨌거나 지금은 젊음에 대한 미련을 털지 않는 한, 공부에만 몰두할 정신력을 발휘할 수 없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련을 턴다고 해서 공부에만 몰두할 정신력이 발휘된다는 것이 아니다. 전건 부정은 일반적으로 오류 추론으로 간주된다.

필자는 필자의 의지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필자는 지금부터 어떤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오직 공부에만 몰두할 정신력이 남아있지 않다. 이는 단지 내 자신을 신뢰하고 자기 암시를 되뇐다고 하여 해결될 일은 아니다. 설령 자기 암시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효과가 드러날지 모르는 막연한 결과주의에 과감한 배팅을 할 수는 없다.

Q4.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가?

1. 기존에 다니던 지방대에 재입학 2.5년 (28 ~ 30)

2. 방통대 3년 (28 ~ 30)

3. 학점 은행제 1.5년 (28 ~ 29)

4. 방통대 3년 → 학은제 1.5년 (28 ~ 32)

5. 학은제 1.5년 → 방통대 2년 (28 ~ 31)

6. 방통대 3년 → 대학원 2년 (28 ~ 32)

7. 학은제 1.5년 → 방통대 2년 → 대학원 2년 (28 ~33)

8. 재입학 2.5년 → 대학원 2년(28 ~ 32)

9. n수 ???

Q5. 동사형 꿈

유튜브에 검색한 '진로'의 결과물에 대한 영상 하나로부터 알게 된 '동사형 꿈'에 대해 탐구해보자.

우선 위 사진의 목록에서 5가지를 중요 순으로 추려보자.

1. 분석하다

2. 연구하다

3. 알다

4. 글 쓰다

5. 주장하다

정리하면, 필자는 오석隩析하고 정연精硏하여 췌탐揣探해낸 것을 찬술撰述하거나 주장(또는 강의) 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원하는 듯이 보인다(사실 1과 2, 2와 3 따위가 겹치기 때문에 다른 동사를 취택해도 무방하지만, 아무래도 지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아 그것을 강조를 하기 위해 상기된 동사들로 구성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겠다.). 이것만 보면 학자나 강단의 교수 같은 성향이거나 그것을 원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원하는 것과 매우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 물론 글이나 말을 다소 학구적으로 하는 스타일이긴 한데,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지는 아닐뿐더러, 최근에는 다른 고민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우선 생계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크다. 그리고 누차 강조하는 젊었을 때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내가 만약 탐독을 위해 속세에서 멀어진다면 나는 또다시 탐련과의 딜레마로 인하여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래서 나는 이제 병행을 하기로 했다. 대신할 건 확실하고 제대로 해내야 하리라. 허투루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 어쨌든 뭐라도 시작한다면 끈기를 가지고 롱런해야 한다.

과거에 공부하다가 힘들어선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원초적인 욕망의 실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깨달음 뒤로 곧바로 공부를 포기하고 속세에 진입했다. 하지만 그 간의 열패자적 삶에 의한 비루함은 필자가 속세에 흡인되는 것을 방해하였고 결국 다시 홍진紅塵으로부터 멀어지는(백수) 인고의 향로에 표착漂着했다.

Q6. 원하는 일은 지속 가능한가?

분명 필자는 지식 탐구를 원한다. 그런데 원함과 좋아함은 일면, 또는 매우 다를 수 있다. 특히 행위의 지속성 측면에서 매우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을 증명하는 가장 가까운 예는 필자 자신에게 있다. 필자가 지식 탐구를 원한다고 해서, 필자가 지식 탐구를 좋아한다고까지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는 다소 이상한 추론이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애초에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부당한 가정 때문이다. 원하는 일이 어떠한 상황에 의해 시행되거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좋아하는 일 역시 어떤 상황이나 여러 조건에 의해 시행되거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어쨌거나 '원하는 일'과 '지속 가능성'의 상관관계를 엄밀하게 따져 알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한 듯 보인다. 원하는 일은 지속 가능하다거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거나, 지속 가능한 일은 원하는 일이라거나, 원하지 않는 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 중, 그 어느 것도 실재적 참인 명제로 간주되기 어렵다. 어쨌든 지식 탐구를 필자가 원하는지, 좋아하는지의 구분보다는, 필자가 그것을 좋아하는지(원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원하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뭐가 되었든 현재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은, 지식 탐구를 '현재' 좋아한다(원한다)는 것이고(따라서 나중에 생각이 바뀔 가능성이 있고), '감정적으로' 좋아한다(원한다)는 것이다(따라서 다른 감정에 의해 언제든 생각이 바뀔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지적 욕구 성향을 베이스로 하여 그에 맞는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만약 유튜브를 하더라도 괜히 하기 싫은 헛짓 하지 말고, 차라리 북튜브를 하든가 내 생각을 대본으로 정리하든가 하여 표발表發하는 유의 영상을 제작하는 편이 낫겠다. 북튜브 같은 경우, 조회 수가 낮고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계발의 측면에서 오래 지속될지 의문이지만, 멘탈 강화 훈련이랍시고 가기 싫은 흉가에 가서 공포 영화 한 편 감상하고 오는 것보다는 미래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솔직히 애초에 흉가나 공포 영화가 무섭지 않아서 멘탈 강화 훈련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한 번 해봄으로써 굳이 앞으로 다시 하지 않을 짓을 골라낸 것으로 만족한다.)? 어쨌든 이제는 정말 선택과 집중의 싸움이 될 것이다. 만약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된다면, 필자는 공부와 탐련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을까? 둘 중 하나는 이미 해결되거나 아예 해소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어쨌든 둘 중 하나라도 시작을 해야 미련을 없애거나 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필자의 전로前路에 지회遲徊가 돈소頓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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